지구촌의 난민
약 6,850만 명. 한반도 전체 인구보다 조금 적은 숫자다. 유엔난민기구(UNHCR) 통계에 따르면 할 수 없이 이주민이 된 전 세계 사람들, 그러니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난민'이라 부르는 사람들의 숫자다. 이중 4,000만 명 정도가 자기 나라 안에서 전쟁, 자연재해, 경제난과 빈곤 등의 이유로 이주민이 된 사람들, 흔히 국내 난민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법적 난민, 그러니까 국제법에 따라 타국에서 난민 지위를 받은 사람들은 2,540만 명에 달한다. 이중 540만 명이 팔레스타인 난민이다. 전 세계 법적 난민 중 절반은 18세 이하의 미성년자다. 세계적으로 310만 명 정도가 법적 보호를 받기 위해 난민 지위를 신청한 후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제주도에서 난민 심사를 받기 시작한 예멘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물론 조금 시간이 지난 이 통계에는 포함돼 있지 않겠지만 말이다.
통계에 따르면 하루에 44,400 명이 전쟁과 여러 가지 박해 때문에 난민이 된다고 한다. 법적 난민의 출신 국가를 보면 남수단, 아프가니스탄, 시리아가 가장 많아서 전체의 57%를 차지한다. 모두 내전이 있는 나라들이다. 그리고 이런 난민을 가장 많이 수용하고 있는 곳은 잘 사는 나라들이 아니다. 순서대로 파키스탄, 우간다, 터키, 레바논, 이란이 가장 많은 난민을 수용하고 있다. 난민을 수용하고 있는 나라 대부분은 부유하지 않은 개발도상국으로 난민의 85%가 이들 나라에 거주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육로를 통해 이웃나라로 피신을 하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동안 해상을 통해 유럽으로 유입된 시리아 난민이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됐지만 그 뉴스는 과장된 면이 있다. 유럽국가들이 민감하게 대응했기 때문에, 그리고 언론이 난민의 유럽 유입을 민감한 사안으로 다뤘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가벼운 문제는 아니지만 말이다.
난민이 될 권리
세계인권선언과 난민지위규약 등은 누구든지 "다른 나라에서 피난처(asylum)를 찾을 권리"가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정치적 박해나 전쟁 및 폭력 상황 때문에 자국을 떠나야 했고, 돌아갈 경우 신체적 해나 박해를 받을 것이 예상되는 상황이란 조건이 붙어 있다. 그런데 이 외에도 경제적 이유,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때문에 고향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도 많다. 경제난민과 기후난민으로 불리는 이들에게는 난민 지위가 부여되지 않기 때문에 타국에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이런 사람들까지 합치면 전 세계적으로 난민은 훨씬 많다.
제주도라는 작은 섬에 500명 이상의 예멘 난민들이 들어오면서 대한민국이란 작은 나라는 한 마디로 '멘붕' 상태가 됐다. 그들이 제주도까지 오게 된 이유는 한 마디로 예멘이 난민 발생을 야기하는 전형적 상황인 내전 중이기 때문이다. 예멘의 내전 상황은 아주 복잡하다. 무력으로 권력을 잡으려는 정치인과 무장세력, 지역 패권을 유지하려는 주변국들의 개입, 그리고 중동연합군에게 병참과 기술 지원을 하고 있는 미국, 영국, 프랑스의 간접 영향까지 얽혀 있다. 이런 내전 상황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 것은 당연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지금까지 1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300만 명 이상이 국내.외에서 난민 신세가 됐다. 2017년 한 해에 수만 명의 어린이가 사망했다는 한 국제단체의 주장도 있다. 난민이 된 사람들 중 28만 명 이상이 이웃나라에서 난민 지위를 부여받았다. 예멘 내에서 난민이 된 사람들은 식량, 거처, 의료지원의 부족 상황, 그리고 생명의 위협을 겪고 있다.
제주도에 있는 500명 이상의 예멘인들은 사실 전체 난민, 그리고 다른 나라들에서 난민 지위를 신청한 후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과 비교해도 아주 적은 수다. 비록 예상치 못한 상황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갈 데가 없어 문화, 종교, 사회가 전혀 다른 제주도까지 왔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난민이 될 권리', 다시 말해 '피신처를 찾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그들을 맞게 된 대한민국은 '피신처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국제사회의 일원인 대한민국의 책임이자 의무다.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별 자원이 없음에도 세계 15위 이내의 경제규모를 유지하며 살 수 있는 이유는 세계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난민 수용은 세계와 연결돼 이익을 취하고 혜택을 입는 대신 치러야 하는 비용 같은 것이다. 다른 한편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짊어져야 하는 도덕적 의무기도 하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의 자세로는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수 없다.
지구촌의 난민
약 6,850만 명. 한반도 전체 인구보다 조금 적은 숫자다. 유엔난민기구(UNHCR) 통계에 따르면 할 수 없이 이주민이 된 전 세계 사람들, 그러니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난민'이라 부르는 사람들의 숫자다. 이중 4,000만 명 정도가 자기 나라 안에서 전쟁, 자연재해, 경제난과 빈곤 등의 이유로 이주민이 된 사람들, 흔히 국내 난민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법적 난민, 그러니까 국제법에 따라 타국에서 난민 지위를 받은 사람들은 2,540만 명에 달한다. 이중 540만 명이 팔레스타인 난민이다. 전 세계 법적 난민 중 절반은 18세 이하의 미성년자다. 세계적으로 310만 명 정도가 법적 보호를 받기 위해 난민 지위를 신청한 후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제주도에서 난민 심사를 받기 시작한 예멘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물론 조금 시간이 지난 이 통계에는 포함돼 있지 않겠지만 말이다.
통계에 따르면 하루에 44,400 명이 전쟁과 여러 가지 박해 때문에 난민이 된다고 한다. 법적 난민의 출신 국가를 보면 남수단, 아프가니스탄, 시리아가 가장 많아서 전체의 57%를 차지한다. 모두 내전이 있는 나라들이다. 그리고 이런 난민을 가장 많이 수용하고 있는 곳은 잘 사는 나라들이 아니다. 순서대로 파키스탄, 우간다, 터키, 레바논, 이란이 가장 많은 난민을 수용하고 있다. 난민을 수용하고 있는 나라 대부분은 부유하지 않은 개발도상국으로 난민의 85%가 이들 나라에 거주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육로를 통해 이웃나라로 피신을 하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동안 해상을 통해 유럽으로 유입된 시리아 난민이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됐지만 그 뉴스는 과장된 면이 있다. 유럽국가들이 민감하게 대응했기 때문에, 그리고 언론이 난민의 유럽 유입을 민감한 사안으로 다뤘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가벼운 문제는 아니지만 말이다.
난민이 될 권리
세계인권선언과 난민지위규약 등은 누구든지 "다른 나라에서 피난처(asylum)를 찾을 권리"가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정치적 박해나 전쟁 및 폭력 상황 때문에 자국을 떠나야 했고, 돌아갈 경우 신체적 해나 박해를 받을 것이 예상되는 상황이란 조건이 붙어 있다. 그런데 이 외에도 경제적 이유,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때문에 고향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도 많다. 경제난민과 기후난민으로 불리는 이들에게는 난민 지위가 부여되지 않기 때문에 타국에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이런 사람들까지 합치면 전 세계적으로 난민은 훨씬 많다.
제주도라는 작은 섬에 500명 이상의 예멘 난민들이 들어오면서 대한민국이란 작은 나라는 한 마디로 '멘붕' 상태가 됐다. 그들이 제주도까지 오게 된 이유는 한 마디로 예멘이 난민 발생을 야기하는 전형적 상황인 내전 중이기 때문이다. 예멘의 내전 상황은 아주 복잡하다. 무력으로 권력을 잡으려는 정치인과 무장세력, 지역 패권을 유지하려는 주변국들의 개입, 그리고 중동연합군에게 병참과 기술 지원을 하고 있는 미국, 영국, 프랑스의 간접 영향까지 얽혀 있다. 이런 내전 상황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 것은 당연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지금까지 1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300만 명 이상이 국내.외에서 난민 신세가 됐다. 2017년 한 해에 수만 명의 어린이가 사망했다는 한 국제단체의 주장도 있다. 난민이 된 사람들 중 28만 명 이상이 이웃나라에서 난민 지위를 부여받았다. 예멘 내에서 난민이 된 사람들은 식량, 거처, 의료지원의 부족 상황, 그리고 생명의 위협을 겪고 있다.
제주도에 있는 500명 이상의 예멘인들은 사실 전체 난민, 그리고 다른 나라들에서 난민 지위를 신청한 후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과 비교해도 아주 적은 수다. 비록 예상치 못한 상황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갈 데가 없어 문화, 종교, 사회가 전혀 다른 제주도까지 왔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난민이 될 권리', 다시 말해 '피신처를 찾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그들을 맞게 된 대한민국은 '피신처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국제사회의 일원인 대한민국의 책임이자 의무다.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별 자원이 없음에도 세계 15위 이내의 경제규모를 유지하며 살 수 있는 이유는 세계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난민 수용은 세계와 연결돼 이익을 취하고 혜택을 입는 대신 치러야 하는 비용 같은 것이다. 다른 한편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짊어져야 하는 도덕적 의무기도 하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의 자세로는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