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평화갈등 이야기평화

성폭력과 집단의 폭력성

2018-02-28
조회수 189

집단의 잔인함

현재 진행 중인 미투운동을 보면서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참담함이다. 기사를 읽다보면 욕과 구토가 한꺼번에 나올 지경이다. 그러다 곧 자괴감이 밀려온다. 어떻게 그렇게 큰 집단과 영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일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벌어졌을까? 우리사회는 도대체 얼마나 병들어 있는 것일까?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물론 우리사회에만 성폭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보다 민주주의와 경제가 발전하지 않은 사회에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보다 더 선진적인 사회에도 여전히 많은 성폭력이 있다. 할리우드 영화계의 성폭력 폭로와 계속되고 있는 미투운동이 그 한가지 예다. 그런데 다른 점이 있다. 거기에서는 성폭력이 대부분 개인적인 공간에서 아무도 모르게 일어났고 개인 사이의 사건이어서 피해자들의 폭로가 있기 전까지 주변인들이 가해자의 실체를 거의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성폭력이 열린 공간에서 일어난 경우도 있었고 주변인들이 가해와 피해를 목격했거나 너무 잘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성폭력을 묵인하거나 피해자가 되도록 강요한 일도 있었다. 이것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많은 사람들이 폐쇄적인 집단 문화와 강한 위계질서, 그리고 독재자로 군림한 가해자의 존재를 장기간 지속된 성폭력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런데 피해자와 주변인들의 증언을 통해 다른 문제도 드러나고 있다. 집단 내 또는 주변인들이 집단이나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가해를 묵인하거나 피해자의 도움을 외면한 사실이다. 왜 그랬을까? 한민족이 가지고 있는 집단주의 DNA 때문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더 뿌리 깊은 무엇인가가 작용했다는 생각이 든다.

 

'집단'을 버려야 한다

한국인에게 집단은 운명에 가깝다. 세상에 태어나 죽는 순간까지 거의 매 순간 집단을 인지하고 온 정성을 들여 집단과 끈끈한 연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집단이 자기 정체성을 확인해 주고 집단의 번영이 곧 자기 이익이 된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집단에 대한 이런 충성과 집착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그 이유 중 하나는 사적, 공적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교육일 것이다. 한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학교에서, 다양한 집단에서 집단의 중요성과 '집단 우선'의 가치와 상식을 배운다. 자기가 속한 집단은 절대적으로 선하고, 설사 잘못을 저질렀다 할지라도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와 책임도 배운다. 집단을 거부하거나 딴지를 거는 것은 배신이라고 배운다. 때문에 집단은 선과 악의 판단을 초월해 존재한다.

 

다른 이유는 설사 집단 내에 악과 폭력이 있더라도 그것을 참고 극복하면 결국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는 사회적, 문화적 인식과 정당화일 것이다. 그래서 집단 내에서 추하고 폭력적인 일이 일어나도 외면하고, 사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아주 정확한 계산 하에서 집단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한다. 설사 그런 폭력이 피해자의 몸과 정신, 그리고 삶 전체를 파괴하는 성폭력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사회적, 문화적 승인 하에서 집단을 지키기 위해, 다른 말로 집단을 통해 자기 이익을 얻으려고 약자를 버리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사회가 가장 뼈아프게 성찰해야 하는 점이다.

 

집단에 대한 충성과 집착은 한국인의 DNA가 아니다. 그것은 사적, 공적 영역에서 끊임없이 이뤄지는 교육과 강요, 왜곡된 인식과 정당화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제 '가족을 위해, 학교를 위해, 교회를 위해, 동아리를 위해' 등의 말은 쓰레기통에 던져 버려야 한다. 그 말 자체가 집단의 폭력성에 굴복하도록 강요하는 또 다른 폭력이다. 더욱이 성폭력과 관련해서는 집단을 위해 가해를 묵인 내지 승인하는, 그리고 피해를 감추는 일은 끝내야 한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배신이자 동시에 자신의 인간성을 포기하는 일이다. 이제 집단을 숭배하거나 집단에 집착하는 것을 끝내야 한다. 공동의 가치와 목표를 위해 모이고 함께 노력하지만 절대 묵과할 수 없는 일이 생긴다면 과감하게 집단을 해체하거나 떠나는 결정을 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는 사회가 돼야 한다. 인간을 파괴하는 집단은 깨고 버려야 한다. 아니 깨고 버릴 수 있어야 한다.

강의·워크숍 안내
평화갈등연구소의 강의·워크숍을 소개합니다.

자세히 보기

평화갈등연구소 Center for Peace & Conflict Resolution
연락처 070 - 8279 - 6431 ( 오전9:00 ~ 오후6:00 / 공휴일 휴무 )
© 평화갈등연구소, All Rights Reserved.
※ 평화갈등연구소 홈페이지의 모든 컨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Made ♡ Postree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