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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한 사회인가?

2024-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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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8일 밤 11시 35분, 거슬리는 ‘삐’ 소리와 함께 재난 문자가 경기도 13개 시군 거주자들에게 발송됐다. 내용은 “북한 대남 전단 추정 미상물체 식별. 야외활동 자제 및 식별 시 군부대 신고”였다. 영어로 “Air raid Preliminary warning,” 즉 “공습 예비 경보”라는 공포스런 내용도 포함됐다. 경기도는 후에 군의 요청에 따라 문자를 발송했다고 밝혔다. 다음날 확인된 내용은 전단이 아니라 쓰레기를 매단 북한의 풍선이 남한 곳곳에 ‘침투’한 것이었다. 쓰레기를 매단 북한 풍선이 날아온 것도, 그것 때문에 자정이 다 된 시각에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재난 문자가 발송된 것도 황당한 일이다.

 

북한의 대남 오물 풍선 살포는 남한 단체들이 보낸 대북 전단에 대한 보복처럼 보였다. 5월 10일 자유북한운동연합이라는 탈북민단체가 대북 전단 30만 장이 담긴 대형 풍선 20개를 북쪽으로 보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북한의 김여정 또한 풍선 살포 직후 “표현의 자유”를 언급하며 대북 전단에 대한 “성의의 선물”이라며 똑같이 “당해보라“고 비아냥댔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어서 다른 분석이 나왔다. 5월 27일 북한이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예고하자 우리 군이 F-35A, F-15K 등 전투기 20대를 띄워 북한에 대한 무력 시위를 한 것이 원인이라는 것이었다. 특히 레이더를 피해 북한에 침투할 수 있는 스텔스 전투기인 F-35A를 띄웠다는 건 김정은 위원장을 겨냥한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고 이것이 김정은 위원장을 분노하게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북한은 쓰레기 풍선으로 그치지 않았다. 29일부터는 서해상에서 GPS 전파를 교란시키는 공격을 했고, 30일에는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 10여 발을 발사했다. 며칠 동안 계속된 GPS 교란으로 어민들은 조업에 어려움을 겪었고 어획량이 감소하는 피해를 입었다. 북한이 오물 풍선을 보낸 게 대북 전단에 대한 보복이든, 아니면 강대강 군사 대결 때문이든 결론은 이로 인해 우리의 일상이 편치 않다는 것이다.


오물 풍선을 날린 북한은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우리의 일상은 편해지고 안전해질까. 사실 세계 어디에도 이웃 국가들이 상대를 비방하는 전단을 날리고 그에 대응해 쓰레기를 매단 풍선을 날리는 사례는 없다. 미사일을 교환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미사일이든 전단이든 풍선이든 다 공격 행위다. 이웃 국가에, 그것도 ‘공식적’ 적인 북한에 북한 체제를 비난하고 남한 체제를 선전하는 전단과 물품을 보내는 행위를 “표현의 자유”라고 우기는 건 비상식적이다. 그에 대응한 보복으로 남한에 풍선을, 그것도 쓰레기를 매단 풍선을 보내는 것도 비상식적이다. 남북한의 군사 대결이 팽배한 가운데 풍선이 언제 미사일이 될지 알 수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남한의 대북 전단은 민간이 한 것이고 북한의 쓰레기 풍선은 정부 차원에서 한 것이니 기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정말 그런가. 북한과의 강대강 대결을 선택하고 대북 전단을 날리는 행위를 방치하고 있는 건 결국 우리 정부다. 우리 정부가 오물 풍선을 다시 보내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겠다고 하자 북한은 6월 2일 밤 오물 풍선 보내는 걸 중단하겠다고 했다. 이로써 입에 담기도 창피한 ‘오물 풍선’ 사건은 끝나는 듯 보였다. 그런데 정부는 6월 4일 9.19 남북군사합의 전체를 효력 정지하겠다고 발표해 다시 군사적 긴장을 끌어 올렸다. 이는 북한의 행동에 우리가 군사적 대응을 할 수도 있고, 이로 인해 북한 또한 자유롭게 군사적 대응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또한 탈북민단체는 6일부터 대북 전단 20만 장을 보내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이에 대해 “자제시킬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언제 북한의 오물 풍선이 다시 날아올지, 풍선 대신 남북한이 군사적 공격을 주고받을지 모르는 매우 불안한 상황이 됐다.

 

5월 23일 강원도 인제의 한 부대에서 훈련병이 군기훈련(얼차려)을 받다가 쓰러져 응급처치를 받은 후 속초의료원으로 이송됐다. 다발성 장기 손상과 고열이 있었고 신부전증세로 신장 투석을 받아야 했는데 이송된 속초의료원에는 투석기가 없었다. 속초의료원은 훈련병을 상급병원으로 이송시키기 위해 강릉아산병원과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에 전원을 문의했지만 모두 받을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 의료대란 이후 병상과 인력이 부족해 생긴 일이었다. 거듭된 전원 문의 끝에 훈련병은 9시 40분쯤 강릉아산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부대에서 쓰러진 뒤 약 4시간 20분이 지나서야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에 도착했지만 결국 목숨을 잃었다. 부대에서 군기훈련이라는 이름 하에 목숨을 위협하는 폭력이 가해지는 사회, 의료 서비스 양극화로 지방의료원에 투석기도 없는 사회, 정부와 의사 집단과의 대결에서 시작된 장기간의 의료대란으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힘들고 죽을 수도 있는 사회. 이게 현재 우리가 사는 사회의 모습이다.

 

남북한의 군사 대결, 군대 내 폭력, 진행 중인 의료 대란 외에도 불안을 야기하고 우리의 일상을 편치 않게 만드는 사회 문제는 많다. 그중 하나로 가계 부채 문제가 있다. 이제는 부채가 없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가계 부채는 흔한 일이 됐다. 하지만 다른 사회와 비교하면 한국의 가계 부채는 지나치게 많다. 한국의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98.4%로 4년째 세계 주요 국가 중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선진국 평균보다 29%나 높은 수치고 개발도상국들보다는 4-5배나 높다. 그나마 3년 6개월 만에 100% 아래로 떨어진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경제학자들은 높은 가계 부채 비율이 소비와 경제성장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논하지만 일반인들에게 이는 갈수록 추락하는 삶의 질, 그리고 생존의 위협을 의미한다. 문제는 가계 부채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계 부채가 늘어가고 갚을 수 있는 여력이 생기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는 물가상승률이 높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임금상승률이 낮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6월 4일 발표한 5월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2.7%였다. 2개월 연속으로 2%대 물가상승률이라며 정부 당국은 안도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안도할 상황이 아니다. 생활물가지수 상승률은 3.1%고, 먹고사는 데 가장 중요한 농축수산물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8.7%나 상승했기 때문이다. 특히 신선채소와 신선과일 등의 품목을 포함한 신선식품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17.3%나 올랐다. 게다가 이제 식품회사들은 줄줄이 상품가격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물가가 높아도 임금상승률이 높으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임금상승률은 물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2024년 최저임금은 전년에 비해 겨우 2.5% 상승했다. 물가상승률보다 낮았다. 특히 생활물가나 신선식품 지수 상승률을 생각하면 너무 낮은 수준이었다.

 

이제 다시 최저임금을 협상하는 시간이 왔다. 최저임금을 심의하는 최저임금위원회가 5월 21일 첫 회의를 시작했다. 이제 치열한 논쟁과 협상이 이뤄질 것이다. 사용자측은 최저 상승률을 주장할 것이고, 노동계는 적절한 상승률을 주장할 것이다. 적절한 상승률이란 적어도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보다는 높아야 하고 거기에 소득 분배 개선까지 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더하면 5.2% 정도가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5.2%가 올라도 사실 고물가 시대를 살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용자측은 그보다 더 낮은 인상률을 주장할 것이고, 정부 또한 노동자편이 아니니 경제가 어렵다는 이유로 노동자측이 요구하는 인상률에 제동을 걸 가능성이 높다. 경제 침체의 부담을 노동자들에게 지우는 일을 반복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여전히 희망은 가지고 싶다.

 

한국은 살만한 사회인가? 이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사실 한국은 전체적인 환경을 고려하면 살기 그리 나쁘지 않은 곳이다. 특히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겐 아주 살기 좋은 곳이다. 하지만 바로 그 경제적인 점을 고려하면 많은 사람에겐 고물가, 높은 주택 가격, 낮은 임금 등으로 살기 힘든 곳이다. 또한 남북한의 군사적 대결 때문에 불안하고 바람 잘 날이 없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최악은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이 언제 완화될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올해 발표된 2023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에서 한국은 57위를 기록했다. 한국의 경제 규모나 한국 문화의 세계 영향력 등을 생각하면 매우 낮은 순위다. 2012년 유엔이 3월 20일을 ‘국제행복의날(International Day of Happines)을 지정했고 ’세계행복보고서는 그뒤 해마다 발간되고 있다. 국가별 순위는 1인당 GDP, 사회적 지원, 건강한 수명, 자유, 관대함, 부패 등 6가지 지표를 측정해 매기게 되는데 객관적 지수를 분석한 판단이 아니라 조사에 답한 개인들의 평가에 따라 매겨진다. 해당 국가의 국민 각자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조사해 매겨진다는 점에서 주관적이지만 행복 체감도를 확실히 알 수 있다. 57위라는 한국의 순위는 바로 한국인들이 느끼는 행복감이 반영된 순위다. 또 2023 세계평화지수(Global Peace Index)에 따르면 한국의 순위는 43위였다. 이 순위는 사회의 안전과 안보, 국내 및 국제 분쟁, 군사화, 현재와 미래의 잠재적 분쟁 등을 분석해 매겨진다. 43위도 괜찮은 순위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른 선진국들의 순위와 비교하면 매우 낮은 것이다. 2024년 초 기준으로 군사력 순위가 세계 4위고, 2023년 기준으로 국방예산 지출액이 세계 11위지만 우리 사회는 다른 선진국만큼 평화롭지 않다. 그래서 다시 되뇌이게 된다. 살만한 사회인가? 누구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는가? 모두에게 살만한 사회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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