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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 소비, 그리고 정의와 평화

2022-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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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쓰레기가 되다

봄이다! 바람은 살갑고도 온화하고 날씨는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으라고 재촉한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꽃망울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꽃놀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설렌다. 쇼윈도에 전시된 화사하고 날렵한 봄옷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래서인지 봄이 되면 너도나도 새 옷 하나쯤은 사서 봄맞이를 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옷은 먹는 것, 자는 곳과 더불어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다. 그런데 우리는 옷이 전통적인 기능을 넘어선 세상에 살고 있다. 옷은 입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드러내는 상징이 됐다. 사람들은 자신을 잘 드러내고, 때로는 잘 치장해서 나은 평가를 얻어내기 위해 옷을 입는다. 타인에게 보이는 이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 사회에서 옷은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길을 걷다 보면 한국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옷을 잘 입는 사람들이라는 평가가 헛된 말이 아님을 실감한다. 이런 이유로 의류업은 중요한 산업 중 하나로 성장했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수많은 옷이 새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선 버려진다. 계절이 바뀔 때 이전 시즌에 팔리지 않은 옷을 할인해 판매하는 매장을 보면 왜 다 팔지도 못할 만큼의 옷을 만드는 건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우리가 필요한 옷은 얼만큼일까? 필요한 만큼만 사고 만들 수는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옷이 넘쳐나는 건 한국의 상황만은 아니다. 경제 수준이 높은 나라들의 상황이 모두 비슷하다. 패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높은 소비 욕구는 과대 생산을 자극한다. 그리고 많은 옷이 쓰레기가 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시즌이나 유행이 지난 옷은 백화점이나 쇼핑몰에서 할인 판매되다 최종적으로는 무게로 계산돼 팔린다. 그런 옷 중 많은 양이 개발도상국이나 빈곤국으로 수출된다. 집에 쌓인 옷은 의류 수거함으로 가고 그렇게 쌓인 옷 또한 대부분 개발도상국이나 빈곤국으로 간다.


라오스 여행을 할 때 사진사들이 한국 노동조합 이름이 새겨진 조끼를 입고 있어서 놀란 적이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한국어가 써진 재활용 옷을 볼 수 있었다. 재활용은 바람직한 일이다. 경제 수준이 높은 선진국에도 기부받은 옷을 팔고 사는 문화가 널리 퍼져있고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가게를 볼 수 있다. 나도 미국과 영국에서 공부할 때 재활용 가게에서 몇 가지 옷을 산 적이 있다. 창고 세일을 통해 입던 옷을 주변 사람들에게 싸게 팔기도 하고 바자회에서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버려지는 옷을 처리할 수 없다.


경제적 발전을 이룬 나라들, 그러니까 선진국이라 부르는 나라들에서 버려지는 옷은 기부 또는 재활용이라는 명분으로 수집돼 다른 나라로 향한다. 하지만 결국 많은 양의 옷이 그곳에서 쓰레기가 된다. 2021년 가을 미국의 뉴스 매체들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골칫거리가 된 옷 쓰레기 문제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미 오래된 문제였지만 미국 매체들이 보도하면서 마침내 선진국 사람들은 자신의 소비가 낳은 실상을 알게 됐다.


매체들이 보도한 건 가나의 상황이었다.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는 매주 1,500만 벌의 중고 의류가 도착하는데 대부분 북미, 유럽, 호주인들이 기부한 것이다. 업자들이 기부한 옷을 모아서 수출하는 것이다. 옷들은 커다란 꾸러미로 묶여 아크라의 시장에 하역되고 상인들이 그것을 산다. ‘죽은 백인의 옷(Dead White Man’s Clothes)라 불리는 이 옷들을 산 상인들은 세탁하고 다시 재단하거나 염색을 해서 판매를 한다. 하지만 애초 품질이 안 좋아 팔 수 없는 옷이 많다. 패스트 패션이 대세가 되면서 기업은 질 낮은 옷을 대량 생산하고 소비자는 값싼 옷을 자주 사고 버리는 일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고 의류 시장에서 외면받은 옷들은 결국 쓰레기가 되는데 전체 수입 중고 의류의 약 40%에 달한다고 한다. 때문에 가나는 일년에 수십 억 벌의 옷을 쓰레기로 처분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다. 결국 옷 쓰레기는 여기저기에 마구 버려져 쓰레기산을 만들고 생활환경은 물론 산, 하천, 바다를 오염시키고 있다.


가나만 옷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 건 아니다. 케냐, 우간다. 탄자니아 등의 상황도 비슷해서 2016년엔 공동으로 중고 의류 수입을 금지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미국 등 수출국의 반발과 자국 내 일자리 감소 우려 때문에 반발에 부딪혔다고 한다. 작년 겨울에는 남미 국가 칠레의 사막에 버려지는 옷 쓰레기 문제도 보도됐다. 매년 약 6만 톤의 중고 의류가 칠레로 들어오는데 그중에 3분의 2인 약 4만 톤이 아타카마 사막에 그대로 버려진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의 많은 국가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


옷 쓰레기 문제를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은 과대 생산이다. 특히 패스트 패션이 생산과 소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옷들은 품질이 그닥 좋지 않다. 패스트 패션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의류업계는 유행과 소비자 취향을 빨리 반영해 생산하고 싼 가격에 빨리 많이 파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쇼핑 채널에서는 매일 그렇게 만들어진 옷을 판매한다. 소비자 또한 계절마다 유행을 따라 구매하고 조금 입다가 버린다.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미국 CBS 뉴스는 지난 30년 동안 미국인이 구매한 의류의 양은 5배 증가했지만 옷을 입은 횟수는 한벌 당 평균 7번에 불과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옷을 버렸고 자선단체에 기부했지만 사실은 쓰레기를 처리한 것이라고도 했다. 가나 아크라 시의회의 폐기물관리국장은 인터뷰를 통해 “기부라는 말 뒤에 숨어 우리에게 문제를 떠넘기지 말고 중고 옷들을 직접 처리하라”고 일갈했다고 한다. 세계경제포럼(WEF)은 매년 전체 직물의 85%가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다고 했다.

과대 생산과 소비로 자원을 낭비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이나 빈곤국을 쓰레기 처리장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단연코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 국가 차원뿐만 아니라 의류 생산자와 소비자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만든 문제를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떠넘기고 해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버려진, 그리고 의류 수거함에서 수집된 옷들도 다른 나라에서 쓰레기가 되고 있다.


의류 생산, 부정의를 낳다

우리가 매일 입는 옷은 사실 생산 단계에서부터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그리고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걸려 있는 많은 옷이 해외에서 생산된다. 상표를 보면 생산지를 알 수 있다. 대부분이 캄보디아, 베트남, 방글라데시, 미얀마, 인도,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등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 국가들이다. 이 나라들은 한국 옷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옷을 생산한다. 세계 의류업계가 이런 나라들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인건비가 싸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의류 생산 공장의 환경이 아주 열악하고 그런 상황이 생산 비용을 낮추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3년 4월에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있었던 의류공장 붕괴 사고는 전 세계인들에게 충격을 줬다. 붕괴된 건물은 라나플라자라는 9층짜리 건물이었고 그곳에는 다섯 개의 의류공장이 있었다. 건물 붕괴로 1,132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2,500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다. 최악의 산업재해였다. 라나플라자는 애초 허술하게 지어진 건물이었는데 후에 몇 개 층이 불법으로 증축됐다. 결국 건물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세계인들은 충격을 받았다. 워낙 큰 사고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또 다른 이유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곳에서는 전 세계 유명한 의류업체들의 옷이 생산됐고 전 세계인이 그곳에서 생산된 의류를 소비했기 때문이었다. 세계인들은 노동자들이 낮은 임금을 받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며 착취당한 대가로 자신들이 적은 돈으로 많은 소비를 할 수 있었음을 알게 됐다. 그후로 전 세계적으로 열악한 노동환경을 무시하고 옷을 생산한 의류업체들에 대한 압력과 불매 운동, 그리고 의류공장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캠페인이 벌어졌다. 세계 의류업체들과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노동자들은 노동 환경 개선과 안전 대책 수립을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했고 그후 상황은 조금씩 개선됐다. 하지만 의류공장들의 상황은 여전히 열악하고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의류공장으로 인한 환경 오염 문제도 심각하다. 의류공장에서 많이 나오는 자투리 천 같은 쓰레기는 제대로 수거돼 처리되지 않고 버려진다. 염색 공장에서 나오는 오염수는 그대로 하천으로 배출된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하천은 쓰레기장이 됐고 강은 오염수 때문에 시커멓게 변했다. 의류공장이 많은 다른 나라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의류공장들의 시설이 열악하고, 노동자들의 임금이 낮고, 쓰레기 처리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건 해당 국가의 문제라고 주장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생산자가 충분한 비용을 내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선진국들은 높은 수익을 내는 3차, 4차 산업에 주력하면서 더럽고 수익이 낮은 1차, 2차 산업은 빈곤국에 떠넘기고 있다. 그것도 정당한 비용을 치르지 않으면서 말이다. 사실 의류 생산 비용에는 공장 운영과 노동자 임금뿐만 아니라 쓰레기와 오염수 처리 비용도 포함되어야 한다. 의류공장을 지을 때 그런 시설도 함께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의류업체들은 문제를 알면서도 외면하고, 빈곤국 정부들은 당장의 이익을 위해 문제를 외면하고, 빈곤국 국민들은 먹고살기 위해 개인적, 사회적 위험을 감수한다.


의류 생산과 관련해서는 다른 문제도 있다. 바로 면화 생산의 문제다. 면화 생산은 오랫동안 아동 노동 문제로 세계의 감시와 비난을 받았다. 2010년대 중반에는 우즈베키스탄이 면화 생산에 아동을 강제 동원해 집중적으로 세계의 비난을 받았다. 전 세계적으로 불매 운동이 벌어졌고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항복했다. 그후 아동 노동은 많이 줄었다. 하지만 인도, 파키스탄, 말리, 페루 등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아동 노동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의 신장 면화가 문제가 되고 있다. 중국 면화의 85%, 세계 면화의 20%를 생산하는 신장 지역에서 중국 정부가 면화 수확에 소수민족인 위구르족을 강제 동원해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국제사회와 세계시민단체들은 신장 면화 불매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인권 문제와 관련한 법이 엄격한 국가들은 신장 면화를 사용해 생산된 의류와 스포츠용품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정의가 있어야 평화도 있다

우리의 소비는 세계와 연결되어 있고 우리는 소비자의 역할이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무엇을 소비하고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는 일이 됐다. 그래서인지 윤리적 소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사람들이 윤리적 소비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단순하게 찜찜해서가 아니다. 제품의 생산과 소비가 바른 방식을, 다시 말해 정의로운 방식을 따르고 있는지 감시하고 정의롭지 못한 방식을 없애기 위해서다. 정의롭지 못한 방식 때문에 피해를 입고 생존에 위협을 받는 사람을 줄이기 위해서다.


세계 경제 체제 안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 무역을 하고, 여건이 좋은 곳에 생산 시스템을 만들고, 노동력이 풍부하고 임금이 낮은 곳을 찾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거기에는 다른 나라의 법률적 허점, 행정 기능의 미숙함, 빈곤으로 인한 선택의 제한 같은 열악한 환경을 악용하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 경제적 거래는 당연하지만 그것이 다른 나라에 쓰레기를 버리고, 열악한 노동 환경에 눈을 감고,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평등한 관계에서는 생길 수 없는 일이고 그래서 정의롭지 않다.


정의는 평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 정의는 ‘옳고 바른 도리’를 말한다. 정의를 실현한다는 건 잘못을 바로잡는 것을 의미한다. 정의는 평화로운 관계를 만들고 평화적 공존을 실현하는 데 필수적인 조건이다. 정의가 없는 평화는 불가능하다. 우리 주변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와 평화롭게 공존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 부당한 일이 없게 하고 피해가 있으면 밝히고 상황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소비는 정의롭지 않은 상황을 외면하고 나아가 악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우리 같은 평범한 소비자가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과대 소비와 과대 생산은 생산지의 열악한 노동 환경, 옷 쓰레기 양산, 환경 오염을 야기하고 있다. 소비자로서 그에 대한 책임을 나눠가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잘 소비하고 잘 감시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민감한 소비 생활을 통해 평화로운 세계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매일 입는 옷도 새로운 눈으로 봐야 한다.


봄이다. 화사한 옷들이 유혹하는 계절이다. 유혹하는 봄옷들을 보면서 하나의 옷이 생산되고 판매되고 버려지는 상황을 성찰해보면 좋겠다. 옷과 관련해 정의롭지 못한 일을 겪는 사람들과 어떻게 평화로운 관계를 만들 수 있을지도 고민해보면 좋겠다.

 

* 위 글은 월간지인 <법무사> 4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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