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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적 공존의 공동체와 사회

202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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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계층 사회

2022년 1월 12일 한 방송국의 저녁 뉴스는 같은 아파트 단지인데 일반 분양 아파트(이하 일반아파트)와 공공임대 아파트(이하 임대아파트)가 눈에 띄게 구분돼있는 사례들을 보도했다. 한 아파트 단지는 임대아파트 한 개 동만 다른 14개의 일반아파트 동들과 일반 건물들을 사이에 두고 뚝 떨어져 있었다. 출입구와 지하 주차장도 따로였다. 일반아파트에는 목욕탕, 헬스클럽, 도서실도 있는데 임대아파트 주민들은 사용하지 못한다고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거절당했다는 주민의 인터뷰도 있었다. 노인정도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다른 아파트 단지의 경우도 비슷했다. 벽과 계단을 기준으로 아래쪽엔 임대아파트 두 개 동이, 위쪽엔 일반아파트 15개 동이 있었다. 임대아파트 주민들은 관리사무소가 일반아파트에 있어서 불편하고, 길찾기 안내에는 일반아파트 출입구가 나와 있어서 배달하는 사람에게 항상 다시 설명해야 한다고 했다. 놀이터 시설도 일반아파트 것이 훨씬 좋다고 했다. 한 주민은 임대아파트라는 걸 꼭 알려야 하는 것처럼 두 개 동만 뚝 떨어뜨려 놓은 게 차별이라고 생각되지만 “(우리가) 임대아파트에 사니까 그런가 보다 해야지 뭐”라고 말했다.

 

일반아파트와 임대아파트의 의도적 구분과 그로 인한 두 아파트 사이의 물리적 단절, 그리고 주민들 사이의 갈등과 차별 논란은 우리 사회에서 익숙한 얘기다. 그럼에도 임대아파트를 따로 구분하는 아파트 건축은 계속됐다. 마침내 2022년 1월 23일 서울시는 앞으로는 일반아파트 가구와 임대아파트 가구가 구분되지 않도록 ‘동.호수 공개추첨제’를 전면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공공주택에 대한 차별적 요소와 부정적 인식을 개선할 수 있도록 정책 방향을 바꾸겠다고도 했다. 늦었지만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이미 존재하는 임대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은 계속 이동과 선택의 자유를 제한당하고 마음고생을 감내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일반아파트와 임대아파트 주민들 사이에는 마음의 벽이 높이 쌓여 있다. 임대아파트 주민들에 대한 일부 일반아파트 주민들의 노골적인 무시에서 비롯된 주민들 사이 충돌도 종종 보도된다. 철제 담장을 설치하고 임대아파트 사람들의 통행을 막는 일반아파트 주민들, 임대아파트 아이들과 같은 초등학교에 보낼 수 없으니 학교를 따로 만들어 달라고 교육청에 요구하는 일반아파트 학부모들, 일반아파트 주민들이 설치한 출입문과 도어락에 막혀 위험하게 높은 담장을 넘거나 15분을 돌아 학교에 가는 아이들, 놀이터에서 임대아파트 아이들을 발견하곤 ‘도둑’이라고 말한 일반아파트 거주 주민 등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생각보다 많다.

 

누구나 다른 사람을 싫어할 수 있고 누군가를 싫어하는 건 개인의 선택이다. 너무 많은 사람이 자기 집 주변으로 다니면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싫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무시하고 공격하는 말과 행동을 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혼자 속으로 갖는 생각과 감정은 자신의 것이지만 밖으로 표출하는 말과 행동은 사회적인 것으로 타인을 해치는 것이라면 사회적 제재의 대상이 된다. 자기만의 영역을 표시하듯 타인의 존재와 이동을 제한하는 것 또한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그런 말과 행동은 혐오의 표출이고 폭력이다.

 

일부 일반아파트 주민들의 행동을 폭력으로 규정하는 걸 불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일이라 해서, 또는 폭력인 걸 모르고 한 행동이라고 해서 폭력이 아닐 수는 없다. 폭력은 자기 이익을 위해 타인을 억압하거나 압박하고, 타인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폭력은 항상 피해를 동반한다. 위의 사례에서처럼 자기 편의를 위해, 그리고 보기 싫다는 이유로 임대아파트 주민들의 이동 자유를 제한하고, 여러 방식으로 압력을 가하고, 언어를 통해 신체적.심리적 해를 가하는 것은 명백하게 폭력이다. 다른 기준을 적용하면 차별이나 인권 침해로 얘기될 수 있겠지만 폭력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게 더 적절하다.

 

모두가 상대적 강자이자 약자

누군가에게 폭력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이 상대보다 우월하고 더 힘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부 일반아파트 주민들은 일반아파트가 임대아파트보다 상위 주택이고 그러므로 거기 사는 자신들이 임대아파트 거주자들보다 상류층이고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힘에 의존해 부당하고 상식에 어긋나는 폭력적 행동을 당연한 요구와 행동으로 포장하고 정당화한다.

 

사람들은 다양한 것을 힘의 원천으로 여긴다. 교육과 부의 수준, 가족, 인맥, 정보, 민족적 배경, 심지어 사는 지역과 외모 등을 자신과 타인 사이 관계를 결정짓는 힘으로 생각한다. 사실 그런 점들은 한 사람을 다른 사람과 구분하는 차이일 뿐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그것들을 한 사람의 특징이 아니라 힘의 관계를 결정짓고 그에 따른 이익과 불이익을 정당화하는 힘으로 인식한다. 그것들을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는 기준으로 삼아서 누가 강자이고 약자인지를 인식한다. 자신이 상대적 강자라고 판단되면 자기 이익을 위해 힘을 이용하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힘의 관계와 이용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제재가 강하지 않은 사회에서는 내재적 판단을 넘어 실질적으로 힘을 악용하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고 듣는 많은 사례는 힘의 악용을 제재하는 우리 사회의 수준을 보여준다. 기업이나 업주의 갑질, 직장 내 따돌림과 괴롭힘, 빈곤층에 대한 무시, 직업에 대한 차별, 난민과 이주노동자에 대한 혐오 등은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데 그에 대한 개인적, 사회적 제재는 아주 헐렁하다. 오히려 힘 있는 개인이나 집단의 눈치를 보고 강자의 심기를 살피느라 약자의 피해를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힘의 관계에 익숙한 우리는 그런 일을 당연하고 일상적인 일로 취급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말로 비겁함을 ‘처세술’로 포장하기도 한다. 어린이나 청소년 사이에서는 얼굴과 몸매, 학업 능력, 사회성 등에 대한 평가가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놀이로 가장된 놀림, 혐오 발언, 욕 등이 ‘약자’로 찍힌 아이들에게 쏟아진다. 아이들 또한 힘의 관계를 확인하고 악용하는 데 익숙하다.

 

우리 사회에 자신이 가진 힘을 내세우고 힘에 의존해 관계를 설정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로는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그런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가부장제와 노인 공경 등 우리는 위계의 설정과 그에 따른 상명하복의 문화에 익숙하다. 그런 문화의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지나친 강조로 불이익을 당하고 부당하게 공격에 노출되는 사람에 대한 관심은 부족하다. 직장에서, 또는 업무로 만난 사이에서조차 가부장적 문화와 나이에 따른 위계가 강조되는 건 21세기에 무척 부자연스럽고 어떤 사람에게는 견디기 힘든 일인데도 말이다. 다른 하나는 힘의 관계를 설정하고 힘에 의존하는 것이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준다고 여겨지고 사회적으로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힘의 악용이 곧 폭력이 되고 피해를 낳는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만나자마자 나이를 확인하고, 출신 지역과 교육 배경을 묻고, 선.후배 관계를 정리하는 건 하찮은 일처럼 보이지만 힘의 관계를 설정하고 그에 따른 이익과 불이익을 정당화하는 데 익숙한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힘의 관계를 강조하고 힘에 의존하는 문화와 사회에서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 제외하고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힘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절대적 강자나 약자가 없다. 누구나 다른 누군가보다 힘이 있거나 힘이 없다. 자기 주변의 어떤 사람보다 교육 수준이 높아도 부의 수준은 낮을 수 있고, 인맥이 넓어도 고급 정보는 없을 수 있다. 그런 것들을 힘으로 인식하고 이용하는 사이에서는 서로 자신의 강한 점과 타인의 약한 점을 강조하는 경쟁적이고 상호 폭력적인 관계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힘의 관계에 의존하고 힘의 악용을 통해 생기는 폭력을 지적하는 이유는 단지 피해에 주목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 폭력이 인간성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폭력은 피해자의 인간성을 파괴한다. 피해자는 잘못이 없지만 폭력을 당하면서 자신이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있음을 느끼고 그런 이유로 자존감이 떨어진다. 심각한 경우 폭력의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고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가해자의 인간성 파괴는 말할 것도 없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폭력을 가하는 건 인간성을 잃는 것이다. 가해자는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지만 보통은 이미 자기 잘못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계속 폭력을 가하는 건 결국 자신의 인간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폭력을 줄이고 없애야 하는 이유는 그러므로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의 인간성도 지키기 위해서다.

 

평화적 공존이 실현되는 공동체와 사회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평화에 대해 언급하고 평화의 중요성을 얘기하는 게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게 됐다. 평화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가 서로 다르고 때로는 평화를 위해서라면 다수의 이익을 위한 선택이나 무력을 동원한 방식도 상관없다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평화를 자주 언급하는 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낫다. 어쨌든 평화적 공존을 추구하고 그것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일반아파트와 임대아파트 주민들의 충돌과 물리적, 정신적 단절 사례가 뉴스에서 다뤄지는 이유는 평화적 공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평화적 공존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가치이자 생활 방식이라면 그에 반하는 일들에 대한 개인과 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

 

평화적 공존은 사실 거창한 게 아니다. 크고 작은 공동체와 사회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것을 말한다. 평화를 연구하는 이유도 결국은 평화적 공존이 이뤄지는 공동체와 사회, 그리고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다. 평화적 공존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최고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는 평화적 공존이 이뤄지는 공동체와 사회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공동체와 사회에 사는 건 안전한 일상이 보장되고 삶의 질이 높아지는 걸 의미한다. 공동체와 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 알지 못하고 관계가 친밀하지 않더라도 결과는 같다. 모두를 알고 모두와 친밀하게 지내는 건 사실 불가능하다. 그냥 가까이 또는 멀리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누구든 그들을 존중하고, 자신 또한 존중받고 있음을 알고, 그래서 그들과 함께 잘 살아가면 우리의 일상은 편안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

 

함께 사는 공동체나 사회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그런 이유로 평화를 얘기하면서 평화적 공존이 이뤄지는 공동체나 사회를 강조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몇 년 전 강의에서 만난 한 청년이 생각난다. 강의가 끝난 후 그는 평화로운 공동체를 강조하는 것이 자신에게는 불편하게 들렸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공동체와 관련해 좋지 않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청년에게 공동체는 나이 든 사람들이 나이 어린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고 경험 없는 미숙한 존재로 취급하며, 나이 어린 사람들은 무조건 나이 든 사람들을 공경하고 그들의 말을 따라야 하는 평등하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관계가 정당화되는 곳이었다. 한 마디로 많은 꼰대를 상대해야 하는 힘든 곳이었다. 보지 않았어도 어떤 곳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고 심지어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지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우리는 공동체를 오해하곤 한다. 그냥 같이 모여 살면, 그리고 가끔 서로 살펴주고 도와주면 그것이 좋은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공동체 안에서 나이와 직위에 따른 위계를 강조하는 건 당연하고 공동체의 원만한 운영과 작동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위계의 강조는 누군가에게는 편하고 좋고 누군가에는 불편할 수 있으며, 그런 공동체라면 진짜 공동체라 할 수 없다. 많은 공동체가 그런 모습이라 할지라도 그건 우리가 알고 있는 공동체의 모습일 뿐 바람직한 공동체는 아니다. 진짜 공동체는 다양한 개인과 집단이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으로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고 모두가 평등하고 공정하게 대우를 받는 곳이다. 나이, 부와 교육 수준, 가족과 민족 배경, 그리고 지위나 직위 등은 한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역할을 구분하는 것일 뿐 타인을 무시하고 통제하며 무언가를 강제할 자격이 되지 않는 곳이다. 특별히 평화로운 공동체는 상대적 강자도 상대적 약자도 없는 곳이다. 이견이 없는 것이 아니라 평화적 방식을 통해 문제의 제기와 토론이 이뤄지고, 용기를 내지 않아도 누구나 제재를 받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이다.

 

도시에서, 그것도 주로 아파트 같은 주거 형태가 대부분인 곳에서 공동체를 상상하는 건 쉽지 않다. 각자도생에 익숙하고 타인의 간섭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은 공동체를 귀찮은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제 공동체는 특별한 곳에서만 실현 가능한 희소성 높은 가치가 됐다. 그래서 아예 포기한 사람들이 많다. 우리 사회가 하나의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공동체는 매일 얼굴을 보고 수다를 떨고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과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니다. 서로 얼굴도 모르고 술잔을 기울여본 적이 없는 사이라 할지라도 각자 자기 역할을 한다면 다양한 개인과 집단의 평화로운 공존이 이뤄지는 공동체와 사회를 함께 만들 수 있다. 알고 모르고를 떠나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자신만의 편안한 삶이 아니라 모두의 평화로운 삶을 위해 노력하는 공동체와 사회 구성원의 역할 말이다.

 

* 위 글은 월간지 <법무사> 3월 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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