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라!
평화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톨스토이의 영향 때문인지 많은 이들이 전쟁이라고 답하곤 한다. 그러나 전쟁이 없다고 평화로운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평화로운가? 쉽게 그렇다고 말하기 힘들다.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이지만 한 해 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총기 사고로 사망한다. ‘인권의 모국’을 자처하며 살기 좋은 나라로 알려진 프랑스에서도 얼마 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로 1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모두 평화와는 거리가 먼 일이다.
그래서 평화는 전쟁만을 문제 삼지 않는다. 처음 평화가 중요한 사회적 개념으로 떠올랐을 때, 사람들은 전쟁을 없애는 것이 곧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세계대전의 한복판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현대의 평화 개념은 전쟁을 넘어 사람들을 괴롭히고 희생시키는 모든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확장되었다.
이 책이 빈곤, 기후변화, 민주주의 등 ‘이런 것도 평화의 주제일까?’ 싶은 문제까지 폭넓게 다루는 것은 그래서다. 저자는 평화의 개념에서부터 평화를 해치는 문제들, 평화를 만드는 방법 등을 설명하며, 반전(反戰)과 비폭력에만 머물러 있던 평화의 울타리를 크게 넓힌다.
일상에서 만들어가는 평화 이야기
이 책에서 저자는 평화가 추상적인 것이거나 국가간의 커다란 문제만이 아니며, 삶과 가까운 문제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평화에 대한 그런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턱없이 낮은 최저임금이나 실업, 직장 내 성희롱처럼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들로 평화를 설명한다. 얼핏 평화라는 주제와는 낯설게 느껴지지만, ‘평화의 눈’으로 보면 이 문제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같은 이유로 이 책은 폭력 하면 쉽게 머리에 연상하는 때리고 부수는 직접적 폭력보다 구조적·문화적 폭력에 더 집중한다. 구조적 폭력은 법이나 제도처럼 사회구조에 내재된 폭력을 말하며, 문화적 폭력은 사상이나 이념에 스며든 폭력이다. 이를테면 과거 미국 일부 주에 있던 흑인을 차별하는 법들은 구조적 폭력이고, 그 법들의 배경이 된 백인우월주의는 문화적 폭력이다. 그런 바탕에서 실제로 백인들이 흑인을 폭행하는 직접적 폭력이 발생하는 것이다.
구조적 폭력 개념을 처음 제시한 평화학자 요한 갈퉁은 “한 명의 남편이 자기 부인을 때린다면 그것은 명백히 개인적 폭력의 상황이다. 하지만 백만 명의 남편들이 무지한 상태로 각기 백만 명의 자기 부인을 때리고 있다면 거기에는 구조적 폭력이 존재한다”는 말로 직접적 폭력과 구조적 폭력의 차이와 관계를 설명했다. 이처럼 구조적 폭력의 해결 없이는 직접적 폭력도 사라지지 않으며 평화도 오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눈앞의 직접적 폭력에 사로잡혀 일상 속 구조적·문화적 폭력을 무시하기 쉬운데, 이 책은 우리가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평화를 보는 눈’을 틔어준다.
평화지수 52위의 한국, 우리는 얼마나 평화로울까?
국제연구기관인 경제평화연구소(IEP)는 해마다 전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국제평화지수(Global Peace Index)를 측정해 발표한다. 평가 항목은 국내외 분쟁, 인근 국가와의 관계, 범죄인식 수준, 살인범죄 수, 정치적 불안정성, 군사비 등으로 총 스물두 가지로 5점 만점이며 숫자가 높을수록 평화롭지 않은 것이다. 2014년 한국은 1.849로 52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전년도 46위(지수는 1.822)에서 6계단 내려간 것이다. 같은 동아시아에 있는 일본(8위)이나 대만(28위)보다도 많이 낮다. 물론 북한은 153위로 가장 평화롭지 않은 나라에 속한다.
주목할 점은 우리나라만 평화가 악화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조사를 처음 시작한 2008년에 세계 평균 평화지수가 1.96이었는데 2014년에는 2.06이었으니 말이다. 늘어난 지역·종교·민족 갈등이 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모두가 평화를 바란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평화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평화를 진지하게 실현해야 할 과제가 아니라 한낱 명분이나 추상적 개념으로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평화를 말뿐이 아닌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이 폭력에 희생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 또한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걸 되돌아볼 수 있는 ‘폭력 민감형’ 인간”이 늘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만 전쟁을 일으키면서도 입으로는 평화를 말하는 모순을 깨닫고 평화를 목적이자 동시에 수단으로서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래서 일상에 숨어 있는 폭력을 평화의 눈으로 보도록 끊임없이 독자를 인도한다. 이 책은 그렇게 평화의 가치를 일깨우며, 폭력을 없애고 평화를 이루기 위한 길을 제시하고 있다.